돈 많은 의사의 본질은?
일단 질문부터 던진다.
어떤 의사가 있다. 돈이 많다. 역시 의사는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구나 싶겠지만, 판단을 하기 전에 우리 언제나 그렇듯 실질을 들여다보자. 이 의사는 병원 운영으로 연 10억을 벌고 있다. 그런데 사실 주식 투자로 매년 100억을 벌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사람은 과연 여러분에게 '의사'인가, '투자가'인가? 물론 직업은 의사가 맞지만, 수익의 본질적 원천을 고려했을 때 그를 단순히 의사라고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결국 '의사'라는 정체성은 일종의 labeling에 불과하다. (혹은 social position)
무릇 언어란 사고를 담는 그릇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어떤 직업적 타이틀이나 외형적 정체성에 매몰되면, 본질에 접근하는 시도가 어렵다. 사람마다 정의하는 기준은 다를 수 있다. 정답은 없다. 그러나 나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실체, 구조, 본질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따라서 내 기준에서는 이 사람을 "의사"가 아닌 "투자가"라고 정의할 수밖에 없다. 너무 과한 해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어떤 꼬마가 이 의사를 보고 말한다. "와, 나도 의사가 되면 저렇게 부자처럼 살 수 있구나!" 그래서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치자. 과연 이 꼬마의 결정은 합리적인가? 부의 본질이 의사 본업이 아니라 투자 수익에서 나온 것인데도? 결국 labeling에 현혹되면 판단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다.
그러니 일단 우리는 "커피"라는 labeling을 걷어내고, 한국 커피산업의 본질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labeling의 함정-커피산업도 마찬가지
스타벅스, 빽다방, 메가커피, 컴포즈커피, 블루보틀... 한국에는 수많은 커피전문점이 존재한다. 편의점보다 많다. 이들을 모두 '커피사업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모두가 커피를 팔긴 하지만, 실질적 정체성과 수익구조는 완전히 다르다. 조르바식으로 이 산업을 다시 나눠보자. 나는 국내 커피산업을 다음의 세 가지로 재분류하고자 한다.
그림자 은행제조업 기반 프랜차이즈 감성 서비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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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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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기반 프랜차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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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서비스업
블루보틀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이유를 많은 사람들이 '경영 실패'나 '한국인 취향과의 미스매치'로 해석한다. 많은 말들이 있지만, 그런 말들은 일단 제쳐 두고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자.
[1. 그림자 은행 - 스타벅스]
2024년 기준, 스타벅스의 국내 선불충전금 잔액은 약 4,000억원. 스타벅스는 일종의 '그림자 은행'이다. 그림자 은행이란, 금융 규제를 받지 않으면서 은행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사업모델이다. 일종의 규제 차익(regulatory arbitrage)을 활용하는 구조다. 규제차익이란 제도 밖에서 제도권의 수익을 복제하는 기술을 말하는데, 스타벅스는 이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
은행의 원리는 간단하다. 예금주에게 3%의 이자를 주고 자금을 유치한 후, 이를 다른 고객에게 6%로 대출한다. 3%포인트의 마진이 생긴다. 플랫폼들은 대부분 이런 꿈을 꾼다. 자본 없이 현금흐름을 만드는 구조 말이다. 카카오? 메신저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를 통해 금융업을 영위한다. 은행은 아니지만 카카오페이는 고객의 선불충전금을 약 5,800억원 보유하고 있다. 무이자다.
스타벅스는? 사이렌오더, 기프트카드를 통해 고객으로부터 선불 자금을 받고, 이를 무이자 자본처럼 활용한다. 이 돈은 예금이 아니니 이자도 지급하지 않고, 규제도 받지 않는다. "커피"라는 상품 담보와 신뢰와 브랜드 이미지 덕에 가능해진 일이다.
심지어 스타벅스 미국 본사의 경우 약 3조원 수준의 선수금을 보유하고 있다. 참고로 미국 지방은행의 80%가 예치금 1.4조원 미만이다. 스타벅스는 은행보다 많은 예치금을 확보한 셈이다. 핵심은, 이 돈이 '무이자'라는 점이다. 이 돈으로 매장을 확장하고, 리스부채를 상환하며, 자금을 운용해 금융수익도 거둔다. 만약 스타벅스가 전자금융법상 핀테크 기업처럼 규제를 받는다면, 이 돈은 안전자산에만 운용되어 연 2~3% 수익률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스타벅스는 작년만 해도 236억원 이상의 금융수익을 얻고, 그 중 일부로는 170억원의 리스이자를 상환한다. 리스이자란, 스타벅스가 임대 매장에 지불하는 임대료다.
전자금융업자(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토스 등)는 2024년 9월부터 선불충전금에 대해 100% 별도관리·정기보고·안전자산 운용 등의 의무를 진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커피전문점'이라는 labeling 덕에 이 모든 규제를 회피한다. 이게 바로 규제 차익이다. (현행 전자금융거래법상 선불전자지급수단 사업자는 금융위 등록 대상이며, 충전금 관리·보고의무가 있다. 그러나 스타벅스는 고객충전금이 '상품권' 또는 '기프트카드' 명목으로 처리되어 전자금융법 적용 대상에서 빠진다. 이는 법령의 사각지대이며, "규제 설계 시점에 해당 모델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종의 비의도적 규제차익이다.)
[2. 제조업 -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
컴포즈커피, 빽다방, 메가커피 같은 브랜드는 소위 "저가 커피" 시장에 포지셔닝 된 플레이어들이다. 이들의 비즈니스는 단순하다. 원가 절감, 제조공정 표준화, 대량 공급, 원자재 마진. 커피라는 소비재를 제조업 기반의 프랜차이즈 모델(유통)로 전개하는 구조다. 즉, 이들은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가맹 수수료와 재료 판매'를 통해 수익을 낸다. 금융모델도 없고, 감성 프리미엄도 없다. 규제 부담도 없지만, 규제차익도 없다. 가격, 접근성, 규모의 경제가 유일한 무기다. 전통적인 제조업에 가깝다고 보는 이유다.
[3. 감성 서비스업 - 블루보틀]
블루보틀은 감성을 판다. 공간미학, 장인정신, 브랜드 스토리. 문제는 이 감성은 유지 비용이 비싸고, 시간과 트렌드에 쉽게 휘발된다. 한국 시장은 감성의 속도전이다. 블루보틀은 자체 앱도 없고, 선불 시스템도 없다. 즉, 고객으로부터 미리 돈을 확보해두는 구조 자체가 없다. 모든 수익은 일회성 현금거래에서 나온다.
한편, 인건비는 높고, 스페셜티 원두 원가는 비싸며, 임대료는 프리미엄 입지다. 애초에 원가가 많이 투입되는 구조다. 더구나 감성은 카피가 가능하다. 개인카페가 비슷한 감성을 더 "저렴"하게 구현한다. 블루보틀은 애초에 스타벅스나 저가커피와 경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들의 진짜 경쟁자는 국내의 로컬 스페셜티 전문점이었다. 그마저도 많다.
규제 차익 레버리지를 쓸 수도 없어, 비용 걱정 없이 출점 하는 것은 그림의 떡이고, 브랜드 비용만 짊어지며, 시간 자본화에 익숙한 한국 고유의 문화 코드/일본과는 다른 장인 정신에 대한 존중 문화 결여 등의 난제와 맞서 싸워야만 했다. 순수하게 오직 '커피 실력' 하나만으로 경쟁해야 했던 셈이다. 업사이드는 막혔으나, 높은 원가 부담을 계속 짊어지는 구조.
정규전을 무력화 시키는 비대칭 전력
스타벅스는 고객의 신뢰와 제도 밖 금융모델을 무기로 싸운다. 일종의 핵무기를 가졌다. 저가커피는 제조원가 통제로 게릴라전을 펼친다. 블루보틀은 감성을 팔지만 그 어떤 레버리지를 쓸 수 없다. 전쟁에 참전하긴 했는데, 맨 손으로 참전을 한 양상이다. 애초에 비대칭 전력을 가지고 싸우는 상대를 대상으로 맨 손으로 덤빈다면, 사실상 "커피전쟁"의 정규전 자체는 무력화 된다.
이 산업을 '커피를 파는 산업'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커피"에 매몰되는 순간, "커피"를 맛있게 만들어야지, 더 다양한 원두로 소비자의 니즈를 만족시켜야지 하는 등의 솔루션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감성 마케팅으로 전개되는 시발점이 되기 일쑤다.
빨리 빨리, 가성비, 시간 자본화가 습관이 된 한국인 특유의 DNA가 존재하는 이상, 그리고 스타벅스 코리아가 존재하는 이상 한국의 커피산업을 커피산업 그 자체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 규제 레버리지, 비용 레버리지, 브랜드 레버리지. 결국 커피는 매개체일뿐, 본질은 전투 구조에 있고, 그 구조가 커피 산업을 재정의 하는 나의 근거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labeling에 속지 말자.
결국 labeling은 생각의 출발점이다. 잘못된 labeling은 잘못된 의사결정을 낳는다. 여러분이 겉으로 보는 것이 항상 전부는 아니다.
다시 묻는다.
스타벅스는 과연 커피가게인가,
그림자 은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