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카지노 40년짜리 독점 사업권이 고작 60억원?!(선 넘네)

조르바

연휴 기간 동안 머리를 비우고 유튜브로 [벌거벗은 세계사_마카오는 어떻게 세계 최대 카지노 도시가 되었나]편을 보다가 의구심 드는 대목이 있어 시작했던 흥심소 작업의 일환입니다.

마카오 카지노 40년짜리

독점사업권 가격이

현재 기준 60억원?!

마카오란 도시는 홍콩 면적의 4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크기입니다. 우리나라의 은평구만한 도시지요. 현재는 카지노 관광사업으로 알차게 먹고 삽니다. 어떻게 작은 어촌 도시 하나가 카지노의 상징이 됐을까요?

일단 마카오의 역사부터 간략하게 살펴 보시죠.

​마카오의 간략 역사

16세기 중반은 포르투갈의 전성기였습니다. 전 세계 해역을 장악하고 해상무역을 독점하던 시긴데요. 유럽 최초로 아시아 진출 항로를 개척합니다. 아시아의 어느 작은 어촌 섬에 떨어집니다. 이렇다 할 인구도 없었는데요. 대략 400명 정도 있었다고 하네요. 탐이 납니다. 중국 명나라의 통치시기였는데요. 포르투칼은 뇌물로 교역의 문을 열고 마카오를 사용하는 비용으로 매년 500냥의 은을 갖다 바치기로 약속합니다. 어차피 마카오는 명나라 입장에서도 버린 땅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잃을 게 없는 거래였던 셈이죠.

마카오를 얻은 포르투갈은 유럽과 일본까지 이어버리는 교역 거점으로 활용합니다. 포르투갈 상인들이 중국 명나라 물건을 떼다 팔아 돈을 많이 벌었는데요. 특히나 포르투갈 국왕 마누엘 1세가 중국 도자기를 그렇게나 좋아했다고 합니다. 중국의 영문명이 CHINA가 된 배경입니다.

포르투갈이 마카오에 들어와 상거래를 일으킨 덕분에 마카오 인구는 8년 만에 인구가 400명에서 5천명까지 증가하게 됩니다. 17세기 중반 명 왕조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면서도 포르투갈은 역시나 마카오 임대료와 뇌물을 바쳐가며 계속 정착합니다.

근데, 안타깝게도 청나라 강희제가 즉위하면서 해상 무역을 활발히 하겠다고 마카오 말고 광저우 항을 개항해 버리네요? 항로가 분산되며 19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마카오는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죄다 광저우로 가버렸으니까요. 19세기 초 1차 아편전쟁이 일어나며 청나라가 영국에 굴복해 난징조약을 체결하게 돼죠. 이 때 홍콩섬을 영국에 할양하는데요. 포르투갈 또한 응?! 지금이니?!를 시전하며 본인들도 마카오 차지를 시도합니다. 식민지에나 보내던 총독을 마카오에 보내고요. 법령까지 변경하며 세금 징수까지 시도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청나라에서 금지하던 도박을 합법화 하기에 이릅니다. 19세기 중반 포르투갈에서 온 마카오 총독은 마카오에서 카지노 개장을 허가하게 됩니다. 귀뚜라미 싸움에도 돈을 걸며 도박을 즐기던 청나라 사람들에게 무한한 환대를 받으며 마카오는 도박의 성지로 성장합니다. 당시에만도 마카오에 도박장이 200개가 넘었다네요. 같은 시기, 유럽에서도 카지노가 유행이었는데요. 왕실의 든든한 재원이 됐기 때문입니다. 학습 효과 덕분에 포르투갈은 발빠르게 카지노를 마카오에 ctrl+c / ctrl+v를 했던 셈이죠.

전쟁의 역사로 점철된 20세기 중반이 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포르투갈이 중립국을 선언하며 마카오는 전쟁의 여파를 피해갑니다. 상대적으로 안전합니다. 덕분에 마카오의 인구는 급증합니다. 종전의 결과로 1949년 중화인민국이 설립되며 포르투갈의 마카오 지배력은 더 강화됩니다. 중국 또한 서방과의 직접 충돌을 꺼렸기 때문인데요. 이때까지만 해도 마카오의 카지노 사업 독점권은 "가오 커닝"이라는 사람 손에 있었습니다. 카지노의 사업권은 1961년에 만료가 되는 상황이었는데요.

마카오 카지노 재벌 스탠리 호, 출처 : 구글 이미지

드디어 1961년 마카오의 카지노 독점 사업권의 새로운 주인공이 탄생할 시기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그 홍콩 출신의 "스탠리 호"​가 등장합니다.

스탠리 호로 말할 것 같으면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13세 당시 아버지의 빌어먹을 주식투자로 집안이 패가망신합니다. 중일전쟁 당시 본인도 피난길에 올라야 했는데, 그 피난처가 바로 마카오였습니다. 거의 무일푼인 상태에서 한 무역회사에 취직했는데 탁월한 능력으로 2년만에 공동경영자의 자리에까지 앉게 되었다네요. 시작은 건설업이었습니다. 건설업으로 돈을 벌며 자산을 축적했습니다.

가오커닝의 카지노 독점 사업권이 만료되자 돈 좀 만진 스탠리 호가 입찰에 뛰어 들게 됩니다. 본인이 세웠던 STDM이란 회사를 통해 40년짜리 카지노 독점 사업권을 획득하는데요.

여기서부터가 아무리 머리 비우고 봐도/들어도 의구심이 들었던 대목입니다.

현재 한화가치 60억원이 40년짜리 카지노 독점 사업권 가격이라니?!

누가 봐도 배아플 가격인데?!

방송에서는 현재 기준 한화 약 60억원 정도를 베팅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소소한 금액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카지노를 통해 번 돈의 90%를 기부와 후원 등의 사회환원 자금으로 사용하겠다는 용처를 밝히긴 했는데요. (이 또한 sales 기준인건지, NPM기준인건지도 모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현재 기준 독점 사업권, 그것도 카지노 사업권, 무려 40년짜리가 현재 한화가치로 60억원은 제 기준에서 선을 넘는...ㅋ 가격이었습니다. (선 넘다=배 아파서 마음이 꽤나 불편하다.)

대체 현재 한화 60억원이라는 카지노 독점 사업권의 산정 기준을 따라가 보게 됐는데요. 영문 자료들을 검색하면 스탠리 호는 정확히 "미화" 41만 달러에 40년짜리 독점 사업권을 낙찰 받았습니다. 1961년 당시 1달러=약125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한화로는 약 5125만원 수준이었던거죠.

그럼 대체 방송에서는 어떻게 61억원으로 환산했을까 궁금할 수밖에 없죠. 방송에서 인용했을 것 같은 기준 중 가정 1(미국 CPI 기준)을 적용해 보면, 공교롭게도 딱 60억원 언저리의 숫자가 나옵니다. 41만달러 * (2025 cpi/1961 cpi) 에 현재 환율 대략 1400원을 곱했으니까요.

네, 철저하게 미국 기준입니다. 1960년대 경제력에 있어 한국과의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미국의 생활물가가 주로 반영되는 CPI 기준입니다. 당시 한국의 경제력 감안한 입찰 규모 한국 기준의 환산액이 알고 싶었는데, 미국 CPI 기준을 적용해 환산하니 어딘가 모르게 말도 안되는 소소한 금액이 산출된 것 같네요.

그래서 제 식대로 다시 산정을 해봤습니다. 당시의 한국 경제력을 반영한 1962년 명목 GDP 기준으로요. 극빈국이었던 한국의 명목 GDP는 약 3375억원에 불과했는데요. 당시 스텐리 호의 입찰금액은 한국의 명목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0.015% 수준이었던 셈입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명목 GPD는 2557조원 수준입니다. 여기에 0.015%를 곱하면? 네, 현재/한국 기준으로 보면 스텐리 호는 40년짜리 카지노 독점 사업권을 약 3800억원에 낙찰을 받은 셈이죠.

이제야 배가 덜 아프면서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여기 저기 찾다 보니 "제 기준" 재미난 얘기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일단 마음의 평화를 얻었으니 마카오 카지노 사업과 관련된 자세한 얘기는 후속편으로..후....